연말의 도시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화려함과 피로 사이, 축제와 일상 사이에서 시민이 머무를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양천구가 겨울 한복판에 꺼내든 해법은 ‘빛’이다. 단순한 조명 전시를 넘어, 걷고 머물며 체험하는 서사형 야간경관 축제 ‘양천 비체나라 페스티벌’이 11월 28일 개막했다. 파리공원과 해누리분수광장을 중심으로 내년 2월 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축제는 도심 속 겨울밤을 동화적 공간으로 바꾸는 장기 프로젝트다.
![]() [코리안투데이] 2025 양천 비체나라 페스티벌 홍보 포스터(사진=양천구청) © 변아롱 기자 |
올해로 5회째를 맞는 비체나라 페스티벌은 양천구의 대표 야간경관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2021년 양천공원에서 시작해 안양천 수변산책로, 오목공원, 연의공원, 신정네거리 교통섬 등으로 무대를 확장해온 이 축제는 매해 장소와 테마를 달리하며 ‘빛을 통한 도시 경험’을 축적해왔다.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계절과 공간을 연결하는 도시 브랜딩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2025년 비체나라의 주제는 ‘빛의 동화, 환상의 문을 열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가진 정서에 동화적 상상력을 결합해, 관람객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구조로 설계됐다. 중심 무대인 파리공원에는 눈사람과 사슴 가족, 에펠탑, 양천구 캐릭터 ‘볼빵빵 해우리’ 등 친숙한 오브제가 빛 조형으로 구현됐다. 공원 동선 곳곳에는 LED 은하수와 눈결정체 연출이 이어지고, 야외무대에는 고드름 형태의 LED 조명이 더해져 공간 전체가 하나의 장면처럼 읽히도록 구성됐다.
상징 조형물의 메시지도 분명하다. ‘BicheNara’ 라이트 아치 게이트는 축제의 서문 역할을 하며 방문객을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새해를 상징하는 붉은 말 조형물은 전환과 도약의 의미를 담았다. 루미나리에 캐슬은 겨울왕국을 연상시키는 구조물로, 가족 단위 관람객과 사진 촬영 수요를 동시에 겨냥한다. 시각적 화려함에 머무르지 않고, 기억에 남을 서사를 남기는 장치들이다.
공간의 확장은 해누리분수광장에서도 이어진다. 신정네거리 일대에 위치한 이 광장에는 높이 7m의 대형 트리와 눈사람 조형물이 설치됐고, 수목을 활용한 별빛길이 조성돼 입체적인 야경을 완성했다. 파리공원이 ‘동화의 숲’이라면, 해누리분수광장은 ‘겨울의 광장’에 가깝다. 두 공간은 보행 동선과 야간 시야를 고려해 서로 다른 분위기로 설계되며, 관람객이 이동하며 체감하는 장면 전환을 유도한다.
비체나라 페스티벌의 또 다른 축은 체험 프로그램이다. 파리공원 내 ‘살롱 드 파리’에서는 라탄조명 가랜드 만들기, 트리 오너먼트 만들기, 오르골 만들기 등 크리스마스 시즌과 맞닿은 문화체험이 운영된다. 단순 관람에서 끝나지 않고, 손으로 만드는 경험을 통해 축제의 기억을 일상으로 가져가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다. 참여는 양천구 평생학습포털을 통해 사전 신청 방식으로 진행된다.
점등식은 두 차례 열린다. 11월 28일 오후 5시 해누리분수광장에서 1차 점등이 진행됐고, 12월 2일 오후 5시 30분에는 파리공원 ‘살롱 드 파리’ 앞에서 2차 점등식이 이어진다. 점등 퍼포먼스와 음악 공연이 결합된 이 행사는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자, 지역 주민이 함께 모이는 겨울의 의식에 가깝다.
이번 축제의 의미는 단순한 볼거리 제공을 넘어선다. 야간경관은 도시 안전과도 직결된다. 밝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자연스럽게 유동 인구를 늘리고, 겨울철 저녁 시간대의 공원 이용을 활성화한다. 이는 지역 상권과도 연결된다. 파리공원과 신정네거리 일대는 축제 기간 동안 가족 단위 방문객과 연인, 친구 모임이 늘어나는 구조를 기대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지속성이다. 비체나라는 특정 며칠에 집중되는 축제가 아니라, 두 달 넘게 이어지는 장기형 야간 콘텐츠다. 이는 시민의 생활 리듬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언제든 들를 수 있는 겨울 풍경”을 만든다. 반복 방문을 유도하는 구조는 지역 축제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양천구는 그간 교육, 보육, 교통, 도시개발 등 생활 밀착형 정책을 통해 구정의 무게중심을 다져왔다. 비체나라 페스티벌은 이 흐름 위에서 ‘정서적 인프라’를 확장하는 시도다. 행정 성과가 숫자로만 남지 않고, 시민의 기억과 감각에 남도록 하는 방식이다.
축제의 완성도는 결국 시민의 체류 시간과 표정에서 드러난다. 사진을 찍고, 아이 손을 잡고 걷고, 잠시 멈춰 불빛을 바라보는 그 순간들이 도시의 겨울을 규정한다. 양천의 겨울밤은 지금, 빛으로 쓰인 동화 한 장을 넘기고 있다.
[ 변아롱 기자 : yangcheon@thekoreantoday.com ]
<저작권자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