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사내카페 장애인 바리스타 정규직 전환 거절은 부당해고”…고용 관행에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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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Korean Today News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 모델로 주목받아 온 ‘사내 카페’가 법원 판단대에 올랐다. 사회적 책임을 내세운 고용 구조 속에서, 장애인 노동자에게 적용된 정규직 전환 기준이 과연 공정했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법원은 결국 “합리적 이유 없는 정규직 전환 거절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회사 측 판단에 제동을 걸었다.

 

[코리안투데이]  © 변아롱 기자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28일 대기업 A주식회사가 운영하는 사내 카페에서 근무하던 중증 지체장애인 바리스타 B씨에 대한 정규직 전환 거절이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B씨가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구제신청을 기각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따르면, 재판부는 A사가 마련한 정규직 전환 평가 기준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고, 이에 따라 B씨에 대한 정규직 전환 평가 역시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장애인 노동자의 특성과 권리를 고려하지 않은 평가 구조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B씨는 중증 지체장애인으로, 2022년부터 A주식회사와 사회적 기업이 협력해 운영하는 사내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근무해왔다. 사측은 근무 초기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직업적응도 평가 점수, 근태, 문제행동으로 인한 상담 횟수 등을 기준으로 1년 뒤 정규직 전환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안내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뒤 A사는 B씨에게 종합 점수가 80점 미만이라는 점, 직업적응도와 집중상담 등 하위 평가 항목 중 2개 이상이 80점 미만이라는 점을 이유로 정규직 전환이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이에 B씨는 해당 통보가 사실상 근로관계 종료에 해당하는 ‘부당해고’라며 2023년 8월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하지만 노동위원회는 회사가 사전에 제시한 평가표에 따라 평가를 진행했고, 평가의 객관성이나 공정성이 현저히 결여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이후 중앙노동위원회 역시 같은 취지로 재심 신청을 기각했다.

 

B씨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과정에서 B씨 측은 정규직 전환 평가 기준 중 ‘직업적응도’와 ‘집중상담’ 항목이 헌법과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집중상담 항목의 경우, 감점 대상이 되는 면담을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고, 본인이 요청한 고충 상담 내용마저 평가에 불리하게 반영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또한 평가 자체가 주 1회 정도 카페를 방문하는 매니저 1인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평가 구조 전반에 객관성과 공정성이 결여돼 있다고 주장했다. 장애인 노동자의 근무 특성과 일상적 적응 과정을 충분히 관찰하기 어려운 구조에서 단일 평가자가 정규직 전환 여부를 좌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이러한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참가인(A주식회사)은 집중상담 평가 항목이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행위 발생 시 진행되는 고충 면담 횟수에 따라 감점하는 방식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감점 내역을 살펴보면 원고 본인의 고충 면담 내용 또한 다수 감점 대상으로 평가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본인의 고충 면담 내용을 불리한 평가 대상으로 삼을 합리적인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집중상담과 직업적응도 평가 항목에 대해 “객관적·합리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해당 평가 항목은 그 특성상 평가자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위험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사전에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나 방법을 마련하거나 이를 피평가자에게 명확히 고지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고 밝혔다. 평가가 대부분 매니저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기초해 이뤄졌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번 판결은 장애인 고용 확대를 내세운 기업의 ‘사회적 고용 모델’이 형식에 그칠 경우 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순히 장애인을 채용하는 것을 넘어, 평가·전환·근로 유지 전 과정에서 차별 요소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강은희 변호사는 “이번 판결이 장애인 근로 사업장 내 정규직 전환 평가 기준이 합리성과 객관성을 갖추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노동자들이 자신의 업무상 고충을 불이익의 위험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정규직 전환 평가 기준 자체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 행위라는 점에 대해 법원이 직접적인 판단을 하지 않은 부분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향후 대기업 사내 카페,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사회적 기업 연계 고용 모델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장애인 고용의 양적 확대를 넘어, 질적 고용 안정과 차별 없는 평가 체계 구축이 기업의 법적·사회적 책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법원이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장애인 고용을 둘러싼 논의는 이제 ‘채용 여부’를 넘어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함께 일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번 판결은 그 질문에 대한 사법부의 분명한 경고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 변아롱 기자 : yangcheon@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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