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칠환 시인의 「한평생」은 하루살이, 매미, 노인, 거북이라는
서로 다른 생명체들의 시간을 통해 인생의 길고 짧음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가’로 결정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삶을 미루지 말고, 지금 주어진 시간에 춤추고 노래해야
한평생이 비로소 빛난다는 깨달음을 전하는 시이다.
![]() [코리안투데이] 머릿돌69. 하루살이·매미·노인·거북이가 들려주는 삶의 진실 © 지승주 기자 |
한평생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반칠환 시인의 시 「한평생」은
이 ‘다름’을 아주 단정하면서도 깊이 있게 보여줍니다.
먼저, 하루살이의 삶입니다.
오전의 작은 알에서 깨어나 점심이면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엔 짝을 만나 결혼하고, 자정에는 자식을 낳고,
새벽이 되면 이미 삶의 끝에 다다릅니다.
그 생은 유난히 짧지만, 하루살이는 탄식 대신 외칩니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짧은 생이라도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는 삶.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고백입니다.
다음은 일주일을 사는 매미입니다.
칠일 동안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존재를 알렸지만,
그 울음을 단 한 번도 나뭇잎들이 외면한 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매미의 노래는 여름의 음악이자 존재의 선언입니다.
비록 짧은 생일지라도,
그 생은 ‘득음’이 있었고, ‘지음’이 있었기에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칠십을 살아온 한 노인의 탄식을 이어 놓습니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로,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로 미뤘더니 가쁜 숨만 남았구나.”
인생을 오래 살았다고 해서 꼭 풍성한 것은 아닙니다.
미루고 아끼고 망설이다 보면,
어느새 몸과 마음에는 남은 숨만 간신히 붙어 있을 뿐입니다.
끝으로 시는 아주 먼 바닷가에서
천 년을 산 거북이가 천 년째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주 길게 사는 생명일지라도,
그 또한 자기 속도로 한평생을 걸어가는 존재일 뿐입니다.
결국 시는 묻습니다.
한평생의 길고 짧음이 중요한가?
아니면 ‘그 안에서 어떻게 나를 드러내며 살았는가’가 중요한가?
하루살이처럼 춤으로 기억될 수도 있고,
매미처럼 소리로 남을 수도 있으며,
늦었다고 느끼는 노인처럼 다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거북이처럼 느리더라도 꾸준히 걸어갈 수도 있습니다.
모두 다 “한평생”입니다.
그리고 그 한평생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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