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다 – 고구려 편] 제3화: 119세의 수수께끼 – 태조왕과 왕계 교체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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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Korean Today News

[역사는 살아있다 – 고구려 편] 제3화: 태조왕의 대전환 – 정복 국가의 탄생

94년. 한 인간이 최고 권력자로 머물 수 있는 시간치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긴 세월이다.

기업으로 치면 창업주가 거의 1세기 동안 CEO 자리를 지킨 셈이다. 왕조로 보면 2대, 3대를 합친 것보다 더 긴 시간이다. 서기 53년 7살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태조왕 고궁(高宮)은 146년 왕위를 물려줄 때까지 고구려를 이끌었다. 그의 치세 동안 고구려는 부족 연맹체에서 중앙집권 국가로, 방어적 소국에서 공격적 정복 국가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오늘 우리는 왜 그를 ‘태조’라 부르는지, 왜 고구려 왕조의 진정한 시작이 동명성왕이 아닌 제6대 왕에게 있다고 보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시대의 풍경

53년, 모본왕이 포악한 통치로 신하들에게 시해당한 후 고구려는 혼란에 빠졌다. 신하들은 대무신왕의 동생이자 고추가(古鄒加) 직위에 있던 재사(再思)를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 하지만 재사는 “나이가 많아 국정을 감당할 수 없다”며 사양하고, 자신의 7살 난 아들 궁(宮)을 왕위에 올렸다. 이가 바로 태조왕이다.

당시 동아시아는 중국 후한(後漢, 25-220)의 전성기였다. 광무제 이래 강성해진 한나라는 현도군, 낙랑군, 요동군을 통해 한반도와 만주 지역을 압박하고 있었다. 압록강 유역의 작은 부족 연맹체였던 고구려에게는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시대였다.

“궁(宮)이 장성하매 용맹스럽고 말 타고 활 쏘기를 잘하였다. 자주 변방을 침략하였다.”

– 출처: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조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후한)

명제~영제 시대 (58-189). 환관과 외척의 권력 다툼. 황건적의 난(184) 전야.

🗿 로마 제국

네로~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54-180). 오현제 시대. 팍스 로마나의 전성기.

🌏 삼한

마한, 진한, 변한의 소국 연맹 시대. 백제와 신라가 서서히 태동하는 시기.

⚔️ 56년, 동옥저 원정의 날

4년 전 왕위에 오른 소년은 이제 11살의 청년이 되어 있었다. 국내성 왕궁의 대회의실에서 태조왕은 장군들과 5부 대가들을 모아놓고 지도를 펼쳤다. “동쪽 옥저를 치겠다.” 짧은 선언이었다. 대가들은 술렁였다. 한나라 세력권에 가까운 동옥저를 치는 것은 곧 후한과의 전면전을 의미했다.

“우리는 더 이상 부여의 그늘 아래 있지 않습니다. 중국의 속국도 아닙니다.” 어린 왕의 목소리는 확고했다. “동해에 이를 때까지, 남쪽 살수에 닿을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해 가을, 고구려군은 개마고원을 넘어 함경도 해안으로 진격했다. 동옥저는 항복했고, 고구려는 동해를 얻었다.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태조왕의 치세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는 세 가지다. 정복, 중앙집권화, 그리고 장기 통치. 먼저 정복부터 살펴보자. 《삼국사기》는 태조왕이 56년 동옥저를 정복하여 “동으로는 창해(滄海, 동해), 남으로는 살수(薩水, 청천강)에 이르렀다”고 기록한다. 이는 단순한 영토 확장이 아니었다.

동옥저 정복은 함경도 해안 지역을 확보함으로써 풍부한 해산물과 교역로를 장악하는 경제적 의미가 컸다. 68년에는 부여에서 망명한 갈사국 왕의 손자 도두를 우태(于台) 관직에 임명하며 흡수했다. 72년에는 관나부 패자 달가를 보내 조나를, 74년에는 환나부 패자 설유를 시켜 주나를 정복했다. 주목할 점은 정복한 소국의 지배층을 고구려 관직 체계에 편입시켰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앙집권화의 핵심이었다. 태조왕 이전 고구려는 계루부, 소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나부, 환나부 등 5부가 각자의 자치권을 가진 연맹체였다. 각 부의 대가(大加)들은 독자적인 군대와 관료를 거느렸다. 태조왕은 이들 부족장을 왕권 아래로 흡수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정복한 소국의 왕족을 고추가(古鄒加) 같은 고위 관직에 임명하고, 5부 체제를 왕 중심의 행정 조직으로 재편했다.

재위 기간

53-146년 (94년)

즉위 나이

7세 (태후 섭정)

주요 정복

동옥저, 갈사국, 조나, 주나

정치 체제

5부 중앙집권화

🔍 학계의 시각

기록의 수수께끼

《삼국사기》는 재위 94년, 119세 사망으로 기록하지만 《후한서》는 121년 사망. 학계는 태조왕이 실존 인물이되 여러 왕의 업적이 통합되었다고 본다.

왕계 교체설

모본왕 시해 후 계루부 내 권력 투쟁을 거쳐 태조왕계가 등장. 이후 소수림왕 때 이전 왕계와 인위적으로 연결했다는 설이 유력.

오늘 우리에게 묻다

태조왕의 94년 치세는 현대 기업 경영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창업부터 타계까지 약 50년,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약 60년이었다. 태조왕은 그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조직을 이끌었다. 장기 리더십의 장점은 명확하다. 일관된 비전, 축적된 경험, 강력한 추진력. 하지만 단점도 있다. 권력의 노쇠화, 후계 구도의 혼란, 시대 변화에 대한 둔감함.

실제로 태조왕 말년, 동생 수성(후의 차대왕)이 권력을 장악하며 내분의 씨앗이 뿌려졌다. 146년 태조왕은 충신 고복장의 경고를 무시하고 수성에게 왕위를 양위했다. 차대왕은 즉위 후 태조왕의 두 아들을 죽였다. 장기 리더십의 딜레마가 여기 있다. 언제 물러날 것인가,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가. 이것은 오늘날 대기업 오너 일가, 정치 지도자, 조직의 장기 집권자 모두가 직면한 영원한 과제다.

구분태조왕 시대현재
조직 전환부족 연맹 → 중앙집권 국가스타트업 → 대기업 전환
리더십94년 장기 집권창업주 장기 경영 vs 전문경영인 체제
승계 문제동생에게 양위 → 아들들 살해오너 2세, 3세 승계 갈등

📚 더 깊이 알아보기

  • 98년, 102년, 114년 책성과 남해 지역 순수(巡狩) – 확보한 영토에 대한 통제력 강화
  • 121년 선비족과 연합하여 요하 중하류까지 진출 – 후한 압박
  • 고추가(古鄒加), 우태(于台), 패자(沛者) – 고구려 관직 체계의 정비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태조왕의 94년은 단순히 긴 통치 기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국가가 부족 사회에서 문명 국가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조직을 바꾸고, 시스템을 만들고, 사람들의 의식을 전환하는 데는 한 세대 이상이 필요하다. 태조왕은 그 전환을 완수했다.

 

“빠르게 가고 싶으면 혼자 가고,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 태조왕은 94년 동안 고구려 전체를 이끌고 멀리 갔다. 그가 쌓은 기반 위에서 고구려는 이후 500년을 더 번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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