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이야기만 나오면 마음이 먼저 불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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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Korean Today News

 

통장을 열었다가 바로 닫은 적이 있다. 잔액이 적어서라기보다는, 숫자를 보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했기 때문이다. 어깨가 조금 굳고, 숨이 짧아지고, 생각이 이상하게 빨라진다. 아직 아무 판단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마음은 한 발짝 물러나 있다. 그날도 그랬다. 뉴스 앱을 켰다가 금리 이야기 몇 줄을 보고는 스크롤을 내려버렸다. 다 읽으면 더 복잡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먼저 들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돈 이야기는 늘 이렇게 시작된다.

 

 

  불안이 앞서는 순간의 공통점

 

 이상한 건, 불안이 생기는 시점이다. 대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아니라, 생각을 시작하기도 전이다. 돈 이야기가 나오면, 아직 아무 숫자도 계산하지 않았는데 이미 마음은 긴장한다. 마치 결과를 미리 본 것처럼, 괜히 피하고 싶어진다. 현장에서 비슷한 장면을 많이 봤다. 소득이 적어서 불안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문제는 상황보다 반응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통장을 보기 전, 설명을 듣기 전, 계획을 세우기 전부터 마음이 먼저 움츠러든다.

 

  숫자보다 먼저 작동하는 것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알긴 아는데요.” 이 말 뒤에는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가 숨어 있다. 이미 불안해진 상태에서는 어떤 정보도 곧바로 들어오지 않는다. 돈은 숫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받아들이는 방식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과거의 경험, 비교의 기억, 실패에 대한 감각이 한꺼번에 튀어나온다.그래서 돈 이야기는 늘 현재가 아니라, 과거와 함께 온다. 이건 설명으로는 잘 해결되지 않는다.

 

  반복되는 선택의 패턴

 

 흥미로운 건 선택의 흐름이다. 불안이 먼저 올라오면, 행동은 거의 정해진다. 미루거나, 최소한만 하거나, 아예 손을 떼는 쪽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대체로 ‘잘못된 선택’이라기보다는 ‘버티기 어려운 선택’이다. 많은 계획이 이렇게 중단된다. 의지가 약해서라기보다는, 감정이 먼저 지쳐버려서. 처음엔 의욕이 있었지만, 구조 없이 시작한 계획은 오래 가지 못한다. 불안은 이 지점에서 다시 커진다.

 

  현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장면 하나

 

 구체적인 숫자를 말하진 않겠다. 다만 이런 경우가 있었다. 상담을 시작할 때마다 “이번엔 제대로 해보려고요”라는 말이 반복되던 사람. 계획은 매번 새로웠지만, 중단되는 시점은 늘 비슷했다. 환경이 조금 바뀌면 감정이 먼저 흔들렸다. 그때마다 계획은 조정되기보다 멈췄다. 틀린 선택은 아니었다. 다만, 그 선택을 지탱해줄 기준이 없었다.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기준의 문제

 

 여기서 관점을 조금 바꿔야 한다. 대부분은 이 상황을 ‘관리 부족’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건 다르다.관리가 아니라 기준이 없을 때 불안은 훨씬 커진다. 돈 문제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더 나은 방법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을 기준이다. 기준이 없으면 매번 상황에 반응하게 된다. 반응은 빠르지만, 오래 버티지 못한다.그래서 사람들은 더 자주 확인하고, 더 자주 비교하고, 더 쉽게 지친다.

 

Timelapse of sun setting at home, empty chair facing out the window, sunset

 

  불안을 없애려는 시도의 한계

 

 불안을 없애고 나서 시작하겠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불안은 그렇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신호를 놓칠 위험이 있다. 불안은 잘못됐다는 표시라기보다, 정리가 안 됐다는 표시에 가깝다. 돈 앞에서 불안해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그 불안을 설명 없이 밀어내면, 선택은 더 어려워진다. 불안은 다뤄야 할 대상이지, 제거해야 할 대상은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는 사실 

 

 숫자를 바꾸기 전에 마음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접근 방식도 조금 달라진다. 설명을 늘리기보다, 속도를 늦추게 된다. 계획을 세우기보다, 기준을 묻게 된다. 이게 항상 맞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만 현장에서는, 이 순서가 조금 더 오래 갔다. 빠른 결정보다, 버틸 수 있는 선택이 남았다.

 

[ 현승민 기자: ulsangangnam@thekoreantoday.comhttps://wiago.link/rickymon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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