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는 기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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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Korean Today News

 

사진 속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 얼굴은 가까이 있지만 시선은 어딘가 멀다. 포스터 중앙에 적힌 문구는 단정하다. “헤어지는 기쁨.” 이 단어들이 주는 감정의 결은 묘하게 어긋난다. 우리는 보통 헤어짐을 상실로, 기쁨을 도착으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 익숙한 문법을 이 포스터는 조용히 거부한다.

 

 [코리안투데이] 붙잡지 않아도 괜찮아졌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감정  © 김현수 기자

 

나는 이 제목 앞에서 잠시 멈췄다. 헤어진다는 것과 기쁘다는 것이 과연 한 문장 안에 공존할 수 있을까. 그러나 조금 더 오래 바라보니, 그 질문 자체가 우리의 삶을 지나치게 단순화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늘 만남을 성공으로, 이별을 실패로 정리해왔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깔끔하게 분류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끝나야만 비로소 시작되는 감정’들이 있다. 더는 붙잡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 서로를 소유하지 않아도 존중할 수 있다는 깨달음,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회복. 헤어짐이 아프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픔이 곧 불행은 아니다. 때로는 고통이 정직한 방향을 가리키기도 한다.

 

포스터 속 인물들의 표정은 극적이지 않다. 울지도, 웃지도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다. 그 담담함이 이 전시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별 앞에서 감정을 과장하는 데 익숙하다. 비극이어야만 의미가 있고, 눈물이 있어야 진짜라고 믿는다. 하지만 어떤 이별은 조용하다. 이미 충분히 사랑했고, 충분히 이해했고, 그래서 더는 붙잡지 않는 선택. 그 선택에는 기쁨이 있다. 자신과 상대를 속이지 않았다는 기쁨이다.

 

나는 취재 현장에서 수많은 ‘관계의 끝’을 봐왔다. 가족, 연인, 동료, 공동체. 끝은 늘 부정적인 기사 제목이 되기 쉽다. 그러나 그 끝 이후의 삶을 따라가 보면, 많은 사람들은 다시 숨을 쉰다.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헤어졌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돌아섰다고 말한다. 그들의 얼굴에는 패배자의 그림자보다 생존자의 빛이 더 자주 남아 있었다.

 

‘헤어지는 기쁨’은 어쩌면 성숙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관계를 끝까지 끌고 가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끝을 알아보는 감각이 필요하다는 고백. 사랑이 변질되기 전에, 존중이 의무로 바뀌기 전에 멈출 줄 아는 용기. 우리는 그 용기를 너무 오래 외면해왔다.

 

이 전시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은 왜 붙잡고 있는가. 정말 사랑해서인가, 아니면 떠날 용기가 없어서인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미덕이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관계를 정리하는 태도 또한 한 사람의 윤리가 된다.

 

헤어짐은 비어 있음이 아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은 뒤에 생기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사람은 다시 자신을 만난다. 혼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함께 서는 시간. 그래서 어떤 이별은 슬프지만 동시에 가볍다.

 

포스터 아래로 흐르는 파란 색감처럼, 이별은 차갑지만 맑다. 감정의 찌꺼기가 가라앉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관계의 진짜 얼굴을 본다. 그리고 그때 깨닫는다. 모든 만남이 계속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끝났기에 아름다운 기억도 있다는 것을.

 

헤어지는 기쁨. 이 역설적인 문장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이별을 미루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이별 뒤에, 어떤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지. 삶은 때로 붙잡는 힘보다 놓아주는 힘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이별은 더 이상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정직한 선택이다.

 

  [김현수 기자  : incheoneast@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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