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은 60세, 국민연금은 65세. 이 숫자 차이는 단순한 제도상의 불일치가 아니다. 은퇴 이후 삶의 구조를 바꾸는 현실적인 문제다. 과거에는 직장을 떠나면 곧바로 연금이 이어졌지만, 지금은 퇴직과 연금 사이에 최대 5년의 공백이 생긴다. 이 시간은 누구의 책임일까.
![]() [코리안투데이] 퇴직 후 연금수급까지의 ‘소득 공백’은 2033년이후 5년으로 확대 © 임희석 기자 |
국민연금 제도는 도입 당시 평균수명이 80세 전후일 것을 전제로 설계됐다. 일정 기간 보험료를 납부하고, 비교적 짧은 노후 기간 동안 연금을 지급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의료기술의 발전과 생활환경 개선으로 기대수명은 빠르게 늘었고, 연금을 장기간 수령하는 인구도 크게 증가했다.
여기에 저출산이라는 구조적 변화가 겹쳤다. 연금을 받을 고령층은 늘어나는 반면, 보험료를 낼 청년층은 줄어들면서 연금 재정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정부가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단계적으로 65세까지 늦춘 배경이다. 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문제는 연금만 늦춰졌다는 점이다. 기업의 법정 정년은 여전히 60세에 머물러 있다. 이로 인해 퇴직 후 연금을 받기까지 소득이 완전히 끊기는 구간이 발생했다. 이 공백은 해마다 길어지고 있다.
연도별로 보면 변화는 더욱 분명해진다. 2010년에는 60세에 퇴직해 곧바로 연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23년 기준으로는 60세에 퇴직한 뒤 63세가 되어야 연금이 시작된다. 2033년 이후에는 연금 개시 연령이 65세로 올라가면서, 퇴직 후 최대 5년의 소득 공백이 발생한다. 특히 1968년생 이후 세대는 이 구조적 공백을 그대로 감당해야 한다.
이 기간을 버티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퇴직연금이나 개인 저축으로 대비한 경우도 있지만, 충분한 준비가 어려운 이들도 적지 않다. 단기 일자리나 재취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받기는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퇴직과 연금 사이의 공백은 개인과 가족의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정년연장 논의가 등장했다. 연금이 늦춰졌다면, 일할 수 있는 시간도 함께 조정돼야 한다는 문제 제기다. 실제로 일부 기업과 공공부문에서는 정년 이후에도 일정 기간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거나 검토하고 있다. 다만 고용 형태와 임금, 근로 조건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는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해외 주요 국가들은 퇴직과 연금의 연결을 보다 정교하게 다뤄왔다. 일본은 법정 정년은 60세이지만, 기업에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과 영국은 퇴직 시점과 연금 개시 시점을 거의 맞추는 구조를 통해 소득 공백을 최소화했다. 프랑스 역시 연금 개혁 과정에서 고용 연장과 연금 수급을 함께 논의해 왔다. 한국처럼 퇴직과 연금 사이에 장기간 공백이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사례는 드물다.
정년연장은 단순히 “더 오래 일하자”는 구호의 문제가 아니다. 퇴직과 연금 사이의 공백을 사회가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정년을 단계적으로 조정할 것인지, 재고용이나 근로시간 조정 같은 보완 장치를 둘 것인지, 청년 고용과의 균형은 어떻게 맞출 것인지에 대한 종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이 문제를 개인의 선택과 책임에만 맡기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연금 개혁과 고용 정책은 분리된 문제가 아니다. 정년과 연금의 연결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노후의 안정성과 세대 간 부담의 균형이 달라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찬반의 구호가 아니라, 공백의 현실을 직시하고 해법을 함께 찾는 사회적 논의다.
[ 임희석 기자: gwanak@thekoreantoday.com ]
▶ 다음 회차 예고
정년을 늘리면 청년 일자리는 줄어들까… 세대 갈등의 진실
<저작권자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