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을 열었다가 바로 닫은 적이 있다. 숫자를 보기 전까지는 괜찮았는데, 막상 잔액이 눈에 들어오자 갑자기 다른 생각이 밀려왔다.지금 이걸 확인할 타이밍이 맞나, 조금 있다가 보는 게 낫지 않나, 별일 없겠지 하는 식의 생각들.결국 확인은 했지만, 확인한 뒤에 남은 건 안도도 불안도 아닌 묘한 피로감이었다.
정보는 충분했다. 이미 몇 번이나 같은 상황을 겪었고, 뭘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손이 한 번에 움직이지 않았다. 이 장면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 [코리안투데이] 통장을 열어보기 전 걱정에 대한 부분을 표현한 이미지 © 현승민 기자 |
정보 앞에서 느려지는 손
이상한 건, 예전보다 모르는 게 줄어들었는데 결정은 더 느려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정보가 없어서 고민했다면, 지금은 정보가 너무 많아서 멈춘다. 무엇을 사야 할지, 언제 시작해야 할지, 어느 쪽이 더 나은지. 선택지 하나하나에 이유가 붙어 있다 보니, 오히려 어느 것도 쉽게 고를 수 없게 된다. 결정을 미루는 동안 우리는 대개 합리적인 표정을 짓는다. 조금 더 알아보고 나서, 확신이 들면, 상황이 정리되면. 하지만 그 ‘조금 더’는 생각보다 자주 다음 달로 밀린다.
비슷하게 반복되는 반응들
현장에서 사람들을 보다 보면, 배경이 달라도 반응은 닮아 있다. 소득이 늘어난 사람도, 줄어든 사람도 비슷한 지점에서 멈칫한다. 정보를 더 찾고, 비교를 늘리고, 결정을 미룬다. 누구도 대놓고 겁이 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대신 “조금 애매해서요”, “지금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같은 말이 나온다. 정보 부족의 문제라기보다는, 기준이 흔들릴 때 나오는 반응에 가깝다.
![]() [코리안투데이] 돈에 대한 불안과 고민에 대한 고독함을 표현한 이미지 © 현승민 기자 |
현장에서 본 한 장면
한 번은 이런 경우가 있었다. 이미 여러 자료를 정리해 둔 상태였고, 필요한 정보도 충분했다. 그럼에도 마지막 단계에서 계속 결정을 미루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더 좋은 선택이 나올까 봐라는 말이 돌아왔다.지금 선택이 틀릴까 봐가 아니라, 혹시 더 나은 게 있는데 놓칠까 봐. 정보가 많아질수록 손실에 대한 감각은 예민해지고, 선택의 기준은 흐려진다.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기준의 문제
사람들은 흔히 이 상황을 관리의 문제로 해석한다. 정리를 더 잘해야 하고, 계획을 더 촘촘히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막히는 지점은 관리 이전이다.
[강조]
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건 정보의 양이 아니라, 기준의 부재다.
[/강조]
기준이 없으면 모든 정보가 동등해 보인다. 그래서 하나를 고르는 순간, 나머지를 버리는 감각이 과도하게 커진다. 이때 사람은 판단을 미루는 쪽을 선택한다.
확신이 아니라 버틸 수 있는 구조
결정을 잘하는 사람들은 항상 확신에 차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다만 기준이 비교적 단순하고, 흔들려도 돌아올 지점이 있다. 그래서 결정 이후의 불안이 판단 자체를 뒤집지 않는다. 정보가 넘치는 환경에서는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버틸 수 있는 선택이 더 중요해진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멈칫하는 순간에 남는 것
결정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마음 한쪽에는 묘한 잔상이 남는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선택을 잘못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 감각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쌓인다. 어쩌면 지금의 어려움은 정보가 많아져서가 아니라,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코리안투데이] 정해지지 않은 길을 표현한 이미지 © 현승민 기자 |
[ 현승민 기자: ulsangangnam@thekoreantoday.com https://wiago.link/rickymon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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