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내려갔다는 소식은 반가워야 마땅하다. 치솟던 원·달러 환율이 정부 개입으로 단숨에 30원 넘게 떨어졌다는 뉴스는, 최소한 시장이 통제 불능 상태는 아니라는 신호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날, 은행 창구 앞 풍경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서울 강남의 한 은행 지점에는 ‘100달러 지폐 품절’이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환율이 내려가자, 사람들은 안도 대신 달러를 사기 위해 몰려들었다.
![]() [코리안투데이] 100달러 지폐 품절 사태가 말해주는 것 © 김현수 기자 |
이 장면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이미 너무 오래 ‘불안한 통화’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환율이 내려가면 안심하기보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다시 오를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한 번에 30원 넘게 빠진 환율은 안정의 신호가 아니라, 차익을 노릴 수 있는 ‘타이밍’으로 읽혔다. 은행 측은 본점에 달러 지폐를 요청하는 시기를 놓친 일시적 현상이라고 설명했지만, 시장은 그렇게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해외 투자를 늘리겠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환율이 내려가면 해외 투자하기가 좀 더 편한 느낌”이라는 인터뷰는 솔직하다. 문제는 그 솔직함이 개인의 판단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다수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 그것은 곧 ‘쏠림’이 된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단기 개입으로 환율을 눌러놓는 것보다, 중장기적으로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신뢰를 시장에 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연말까지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내년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말엔 현실적인 체념이 섞여 있다.
한국은행은 과도한 쏠림 현상에 대해 시장 안정화 조치를 적극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경계감이 높아진 외환 시장을 관리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정책의 언어와 시장의 감정 사이에는 늘 간극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숫자보다 경험을 믿고, 발표보다 체감을 따른다. 그래서 환율이 내려간 날, 은행에서 사라진 것은 달러 지폐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좀 괜찮아질지 모른다’는 기대도 함께 소진됐다.
100달러 지폐 품절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환율 안정이라는 말을 쉽게 믿지 못한다는 증거다. 환율을 잡았다는 선언보다 더 필요한 것은, 그 상태가 유지될 것이라는 신뢰다. 그 신뢰가 쌓이지 않는 한, 환율이 내려가는 순간마다 사람들은 다시 은행으로 달려갈 것이다. 안정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안을 대비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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