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불안] 불안은 소득이 아니라 ‘기준 없음’에서 시작된다

Photo of author

By The Korean Today News

 

통장을 닫는 순간

 

아침에 커피를 내려놓고 통장을 열었다가 바로 닫는 순간이 있다. 숫자가 줄어든 것도 아니고, 새로 빠져나간 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래 들여다보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마치 확인하는 것 자체가 어떤 책임을 떠안는 일처럼 느껴질 때.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날은 계산기를 켰다가 다시 끄게 된다. 이 장면은 소득이 적을 때만 반복되지 않는다. 오히려 소득이 늘어난 뒤에 더 자주 나타나기도 한다.

늘었으니 괜찮아야 할 것 같은데, 마음은 반대로 움직인다. 이런 순간이 왜 생기는지는, 그때는 잘 보이지 않는다.

 

  [코리안투데이] 통장을 열었다가 닫는 이미지 © 현승민 기자

 

 

불안의 크기와 소득의 크기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가장 자주 깨지는 가정이 있다. 돈에 대한 불안은 소득이 적어서 생긴다는 믿음이다.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은 뒤에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만 바뀐다. 적을 때의 불안은 ‘모자랄까 봐’에 가깝고, 늘어난 뒤의 불안은 ‘이렇게 써도 되는지’로 옮겨간다. 방향은 다르지만, 둘 다 같은 질문을 품고 있다. 나는 지금 어떤 기준으로 이 돈을 다루고 있는가. 이 질문에 바로 답이 나오지 않을 때, 불안은 숫자보다 먼저 반응한다.

 

반복되는 행동의 패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지점에서 멈춘다. 가계부를 시작했다가 흐지부지되고, 계획을 세웠다가 몇 달 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정보는 충분한데, 손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뉴스 제목에 과하게 반응하는 날이 있다.누군가의 투자 성과 이야기를 들으면 계획이 흔들린다. 원래 하던 방식이 갑자기 초라해 보인다. 이때 사람들은 대개 방법을 바꾸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기준이 없는 상태였다는 사실은 잘 떠올리지 않는다.

 

관리라는 말의 함정

 

돈을 ‘관리한다’는 표현은 꽤 그럴듯하다. 통제하고, 조정하고, 최적화하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관리에는 전제가 하나 깔려 있다. 모든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전제다.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소득은 변하고, 지출은 어긋나고, 감정은 계획보다 빠르다. 관리를 잘하려 할수록 확인은 잦아지고, 확인이 잦아질수록 불안도 함께 커진다. 이쯤에서 질문이 하나 남는다. 문제는 관리가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관리라는 사고방식 자체일까.

 

기준 없이 시작된 계획

 

기억에 남는 한 경우가 있다. 특별히 무리한 선택을 한 사람은 아니었다. 정보도 충분했고, 의지도 있었다.
처음 몇 달은 계획이 잘 굴러갔다. 그런데 환경이 조금 바뀌자 흐름이 깨졌다. 지출 하나가 예상보다 커졌고,그다음 달부터 전체 계획을 다시 보게 됐다. 결국 손을 놓았다. 나중에 돌아보니 계획이 틀렸다기보다는,버틸 기준이 없었던 쪽에 가까웠다. 어디까지는 괜찮고, 어디부터는 조정해야 하는지 정해두지 않았던 것이다. 

 

[코리아투데이] 재무보고서를 보고 고민하고 있는 모습  ©현승민 기자

 


 

소득이 아니라 기준의 문제

불안을 줄이는 것은 돈을 더 버는 일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을 기준을 정하는 일에 가깝다.

이 문장은 언제나 편하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기준을 세운다는 말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모든 선택지를 열어두고 싶은 마음과 충돌한다. 하지만 기준이 없을 때 사람은 더 많이 흔들린다. 선택지가 많아서가 아니라, 어디로 돌아와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기준은 자유를 줄이는 장치가 아니라, 되돌아올 수 있는 좌표에 가깝다.

 

비교가 시작되는 지점

 

남과 비교하는 순간은 대개 기준이 흐려졌을 때다. 원래 세워둔 방향이 분명할 때는 타인의 선택이 크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준이 사라지면 모든 사례가 참고서처럼 보인다. 이때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이게 맞는 선택인지 모르겠다고. 사실 그 질문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기준이 사라졌다는 신호에 가깝다. 설명을 더 얹는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정보는 이미 충분한 경우가 많다.

 

멈추는 지점에서 남는 생각

 

통장을 다시 닫는 그 순간으로 돌아가 보면, 불안은 늘 숫자 뒤에 서 있었다. 보이지 않는 기준의 빈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불안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어디에 기준이 비어 있는지를 알려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바라보는 데에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하다.

 

  [코리안투데이] 멈춰선 자리에서 남은 잔상 이미지 © 현승민 기자

 

[ 현승민 기자: ulsangangnam@thekoreantoday.com https://wiago.link/rickymoney ]

 

 

  

📰 기사 원문 보기

<저작권자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남기기